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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크로몰리 로드 500km 랜도너리 후기진동을 이겨낸 철의 감성, 장거리를 넘어선 신뢰VintageBikeLab 2025. 6. 2. 12:56
왜 크로몰리 로드로 500km를 달리기로 했는가
500km라는 거리는 라이더들에게 하나의 상징이다. 단순한 장거리를 넘어선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페달을 반복해서 밟을 수 있는 체력, 멘탈, 장비의 내구성,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시험되는 거리다. 그런데 그 도전을 내가 가진 오래된 크로몰리 로드바이크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전거를 탈 때 가장 중요한 건 감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나 가벼운 무게가 아니라, 나와 자전거가 하나가 되는 느낌. 그리고 그 감각을 가장 분명하게 주는 건, 내 경험상 크로몰리 프레임이었다.
내가 타는 자전거는 90년대 말 일본 브랜드의 풀 크로몰리 로드. 퀼스템, 스레드 헤드셋, 9단 드라이브트레인. 전통적인 구성에, 최신 기술은 거의 섞이지 않은 구성이다. 빠르지도, 가볍지도 않지만 특유의 진동 흡수력과 부드러운 페달링 감각이 있어 오래 탈수록 믿음이 쌓인다. 그래서 나는 실험해보기로 했다. 이 자전거가, 정말 ‘500km’를 견딜 수 있을지. 단지 타는 것뿐 아니라, 이 자전거와 함께 ‘넘어설 수 있을지’를.
랜도너는 경주가 아니다. 속도를 다투기보다는, 일정 시간 안에 나만의 리듬으로 완주하는 장거리 여행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크로몰리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단단하고, 리듬감 있고, 나를 서두르지 않게 만드는 자전거. 나는 그 믿음을 검증해보기 위해 강원도에서 출발해 충북을 거쳐 경기도까지 올라갔다 돌아오는 500km 코스를 택했다. 고도 상승은 4200m, 도전은 내 마음보다 현실이 더 무거웠지만, 이 자전거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크로몰리 자전거의 장거리 세팅 – 무게보다 중요한 것들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자전거 세팅에서 가장 먼저 말하는 건 ‘무게’다. 하지만 크로몰리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알 것이다. 무게보다 중요한 건 안정감과 진동 흡수력이다. 나는 이번 500km 랜도너를 준비하면서 무게를 줄이기보다, 장시간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안장과 바테입. 안장은 브룩스 B17 클래식 모델을 사용했고, 바테잎은 코르크 베이스로 두 겹 감았다. 크로몰리 프레임 특유의 ‘무른 느낌’과 이 조합은 몸 전체로 진동을 흡수하게 해준다. 패니어 대신 탑튜브 백과 프레임 백, 싯포스트 뒤쪽 작은 롤백 하나. 짐은 적었지만 필수품은 다 들어있었다. 라이트는 다이나모가 아니라 USB 충전식으로, 핸들바와 헬멧에 이중 장착했다.
타이어는 700x28c 튜브타입. 옛 프레임이지만 클리어런스가 넓어 32c까지도 가능하지만, 나는 노면 효율을 고려해 28c를 선택했다. 펑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케블라 벨트가 들어간 모델을 사용했고, 예비 튜브 2개와 CO₂ 카트리지도 챙겼다. 브레이크는 캘리퍼 방식이지만, 이 프레임과 휠 세팅에선 제동력이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세팅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페달링, 진동, 피로, 그리고 크로몰리가 보여준 의외의 장점들
주행 초반 100km까지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어떤 자전거든, 체력이 넉넉한 상태에선 대부분 비슷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150km를 넘기면서부터 몸의 피로는 서서히 쌓이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프레임의 성격이 드러난다. 크로몰리 자전거의 특성은 바로 이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가장 먼저 느낀 건 진동의 부드러움이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사이를 넘나드는 구간, 그 미세한 연결부의 충격이 크로몰리에선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알루미늄이나 카본에선 ‘툭툭’ 끊기는 충격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프레임 전체가 진동을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로가 다르게 쌓였다. 흔들림에 의한 체력 손실이 줄어드니, 더 오래 같은 자세로 버틸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리듬. 페달을 밟을 때 반응이 직선적으로 오지는 않지만, 한 번 회전이 올라가면 속도가 자연스럽게 유지됐다. 페달링이 끊기지 않고 흐르는 느낌. 이것이 장거리에서 크로몰리가 사랑받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처럼 평소 고출력 라이더가 아닌 사람에겐 이런 흐름이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나는 라이딩 중간에 프레임을 손으로 몇 번씩 쓸었다. 크로몰리는 단순한 자전거가 아니었다. 뭔가 함께 여행하는 동료 같은 느낌. 기계적 효율을 넘은 어떤 ‘공감’ 같은 게 있었다. 이런 말이 너무 감성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300km를 넘긴 후에도 나는 자전거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묵직한 울림에 위로를 받았다.
250km 이후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 멘탈과 체력의 경계
많은 사람이 얘기한다. “250km를 넘기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정말이었다. 그 지점 이후부터는 단순한 체력이 아니라, 멘탈이 모든 걸 지배한다. 허벅지는 이미 뻐근했고, 손목은 바테이프를 아무리 감아도 저릿했다. 그런데도 계속 가야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돌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크로몰리는 거칠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느긋해졌다. 강하게 밟지 않아도 흐름이 유지됐고, 가벼운 페달링으로도 속도가 크게 줄지 않았다. 피로한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냥 타고 있으면 앞으로 나가는’ 느낌을 줬다. 엔듀런스 프레임이란 게 딱 이거구나 싶었다.
야간 라이딩에 들어서면서는 라이트가 중요해졌다. 크로몰리 핸들바는 진동에 강해서, 라이트 흔들림도 적었다. 피로와 졸음이 겹치는 새벽 시간, 자전거가 흔들리지 않고 일정한 자세를 유지시켜주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나는 이 자전거를 탔기에 무너지지 않았다고 믿는다.
400km 구간을 지나며 다시 해가 떠오를 때, 나는 감정적으로 울컥했다. 단지 500km를 타는 게 아니라, 뭔가를 ‘증명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타는 이 철 자전거도, 지금 이 시대에서도 여전히 쓸모 있고, 아름답고, 강하다는 걸.
완주 후, 나는 크로몰리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종착지에 도착해 자전거에서 내렸을 때, 다리는 풀렸지만 마음은 꽉 차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 자전거, 절대 팔지 말아야겠다”였다. 크로몰리 프레임은 이번 여정 내내 아무 문제 없이 나를 이끌었고,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자전거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기술보다 감각, 속도보다 연결감, 최신보다 신뢰. 크로몰리는 그런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무겁다는 편견, 느리다는 고정관념. 그 모든 건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크로몰리는 장거리용으로 충분히 훌륭하다”고.
앞으로도 나는 카본 프레임을 탈 것이다. 가볍고 날카로운 감각이 필요한 순간도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로 오래 달리고 싶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크로몰리를 꺼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길 위에서, 또 다른 500km를 함께할 것이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크로몰리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해 온 설계 철학의 집합체라고.
그 철을 믿었고, 그 믿음은 나를 먼 길 끝까지 데려다줬다.나는 이 500km를 통해 단순한 완주 이상을 경험했다.
라이딩 내내 프레임이 몸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계속 느꼈고,
페달링의 리듬, 진동의 전달, 지형의 변화에 대한 반응이
매 순간 날카롭게 인식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몰리는 단지 '옛날 자전거'가 아니었다.
시간과 감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메카닉 파트너였다.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보다,
이 자전거로 ‘충분히 즐기며 왔다’는 실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프레임의 리듬이 날 도왔고,
잡소리 하나 없이 묵직하게 굴러가는 타이어 소리는
내 안의 집중을 놓치지 않게 만들었다.그래서 다음에도 나는 이 자전거를 꺼낼 것이다.
계산된 효율보다, 직관적인 신뢰와 감각의 세계가
내게 더 잘 맞는다는 걸 이제는 확신하게 되었으니까.'VintageBikeLab'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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