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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티지 뎀퍼 포크 오버홀 도전기오래된 서스펜션, 다시 숨을 쉬다
    VintageBikeLab 2025. 6. 1. 21:41

    빈티지 뎀퍼 포크 오버홀 도전기오래된 서스펜션, 다시 숨을 쉬다

    처음엔 그냥 기름칠만 하려고 했다

    빈티지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다.
    그 시대의 프레임이나 부품에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 정서적인 매력이 있다는 걸.
    내가 이번에 손을 댄 뎀퍼 포크도 그런 종류였다.
    90년대 후반쯤 생산된 리지드 MTB 프레임을 중고로 구하면서
    그에 어울릴 만한 클래식한 서스펜션 포크를 찾다
    마침 중고 장터에서 눈에 띈 것이 바로 이 뎀퍼 포크였다.
    바래버린 데칼, 살짝 녹슨 볼트, 눌렀을 때 미묘하게 걸리는 느낌.
    겉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 세월의 흔적이 이 포크를 더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오버홀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정비라곤 해도 겉에 묻은 오염을 닦고
    실링 주변에 약간의 포크 오일을 뿌려주는 정도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몇 번씩 포크를 눌러보며 테스트를 하던 중,
    왼쪽은 매끄럽게 눌리는데 오른쪽은 눌릴 듯 말 듯 멈칫거리는 걸 발견했다.
    그 작은 이질감이 의심을 낳았고,
    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오일이 굳은 건 아닐까?’ ‘혹시 내부 실이 마모된 걸까?’
    ‘이대로 타도 괜찮을까?’라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결심이 생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뜯어보자.’

    무모하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구형 포크의 정비 매뉴얼은 찾기 어렵고,
    부품 수급도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 ‘멈칫거림’이
    포크를 단순히 장식품으로 두고 보긴 어렵게 만들었다.
    나 자신에게도 증명해보고 싶었다.
    이 오래된 포크, 내가 살릴 수 있을까?


    이 오래된 댐퍼 포크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었을까

    처음 포크를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봤을 때,
    외형상으로는 평범한 듀얼 레그 타입의 서스펜션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모델명을 검색해도 매뉴얼은커녕,
    정확한 사진 한 장 구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오래되었고, 알려지지 않은 모델이었다.
    다행히 댐퍼 포크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기에
    양쪽 레그를 눌러보면서 대략적인 감은 잡을 수 있었다.
    한쪽은 스프링, 한쪽은 댐퍼 방식으로
    유압 댐핑이 들어가는 고전적인 구조였다.

    문제는 댐퍼를 분리하는 과정이었다.
    하단 볼트를 풀어도 댐퍼 튜브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굳어버린 오일은
    마치 접착제처럼 내부를 고착시켜
    툴을 넣고 돌릴 때마다 기분 나쁜 마찰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조금만 무리하면 알루미늄이 휘거나,
    내부 부품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
    ‘여기서 부러지면 진짜 끝이다’는 생각에
    툴 하나를 돌릴 때마다
    한숨을 한 번씩 쉬며, 신중하게 진행했다.

    분해를 끝냈을 때, 나는 오래된 기계의 심장을 처음 보는 의사의 심정이었다.
    실은 거의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오일은 기름이 아니라 진흙처럼 흐물거렸다.
    리바운드 댐핑에 필요한 피스톤 구조는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O링은 부스러지듯 갈라졌다.
    하지만 내심 기대하던 건 이런 모습이었다.
    ‘망가져 있어야 내가 고칠 수 있다.’
    완전히 새것 같은 상태였다면, 오히려 손댈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댐퍼 포크의 속살을 드러내 놓고
    하나하나 구조를 눈으로 익히고 손으로 만지며
    복원을 위한 설계를 시작했다.


    오버홀을 위한 도구와 재료, 하나씩 채워간 정비대

    포크 오버홀은 ‘도구의 싸움’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처음에는 5mm, 6mm 육각렌치와 알코올 클리너 정도로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댐퍼를 빼고, 오일을 교체하고, O링을 교체하고,
    심지어는 내부에 끼워진 스냅링을 제거하기 위해
    정밀 플라이어, 롱노즈, 얇은 드라이버 등
    그간 내가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정비 도구들이 필요해졌다.

    인터넷에서 조사를 하면서 필요한 도구를 하나씩 메모했다.
    중고 자전거 포럼을 뒤지고, 해외 유튜브에서 옛 포크 분해 영상을 찾아보며
    비슷한 상황에 필요한 도구들을 적어 두었다.
    정비대는 점점 복잡해졌고,
    마치 하나의 작은 수술실처럼 바뀌어 갔다.
    깨끗한 천, 순면 장갑, 브러시, 면봉,
    점도 다른 포크 오일 2종,
    실리콘 구리스,
    실의 규격을 직접 측정해서 주문한 O링 세트까지.

    특히 오일 선택이 고민이었다.
    요즘 포크에는 브랜드별 전용 오일이 있지만
    이 구형 포크에는 공식 매뉴얼도 없었다.
    결국 오일 점도(Viscosity Index)를 비교하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포크 전용 오일을 골랐다.
    너무 묽으면 댐핑이 무너지고,
    너무 진하면 리바운드가 죽는다.
    그 차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한쪽 다리에만 오일을 교체한 뒤,
    수십 번 눌러보며 미세한 차이를 비교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정비라는 게 단순한 부품 교체만은 아니다.
    이 포크에 들어갈 오일, 실, 도구 하나하나가
    이 댐퍼가 어떻게 작동할지를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모든 준비물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포크를 고친다’가 아니라
    ‘이 기계를 살린다’는 감정이 생겨났다.


    손끝에서 되살아난 감각, 조립은 분해보다 조심스럽게

    조립을 시작할 때, 나는 일단 정비대를 정리했다.
    분해하며 적어 놓은 노트, 사진으로 남겨둔 부품의 순서,
    청소가 끝난 실과 댐퍼 튜브, 새로 구입한 오일과 구리스.
    정신없는 책상은 하나의 조용한 수술대가 되었고,
    나는 기술자가 아닌 장인처럼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먼저 댐퍼 튜브 내부를 알코올로 닦았다.
    브러시로 먼지를 털고, 면봉으로 바닥을 훑고,
    경화된 오일 자국은 천천히 닦아냈다.
    오일 주입 전에 실링을 교체하고,
    새로운 O링을 삽입한 후
    실리콘 그리스를 손끝으로 얇게 펴 바르며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
    그 어느 공정 하나도 급하게 해서는 안 됐다.
    분해보다 조립이 어려운 이유는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작동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일을 주입한 뒤, 리바운드 테스트를 반복했다.
    첫 주입은 7wt 오일,
    너무 느렸다.
    5wt로 교체 후 반응이 확연히 부드러워졌다.
    다만 리바운드가 너무 빨라
    피스톤 속 조절 구멍을 살짝 좁혀주었다.
    그 작은 조정 하나로 포크는
    흡수는 부드럽게, 리턴은 적당히 여유 있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조립을 마치고 포크를 눌렀을 때,
    그 감촉은 달랐다.
    기계가 다시 숨 쉬듯
    한 번 눌리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그 리듬.
    그걸 손끝으로 느낀 순간,
    이 모든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비 이후의 주행에서 느낀 변화와 확신

    포크 조립을 마치고 나서 자전거에 다시 장착하는 순간,
    마치 오래된 친구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다.
    손으로 프레임을 감싸고, 포크를 헤드 튜브에 끼워 넣으며
    기억 속의 라이딩 감각이 천천히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새 제품이었다면 느낄 수 없는 무게와 감성.
    정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댐퍼 포크는
    그 자체로 나의 손끝과 시간을 기억하는 기계였다.

    포크를 장착하고 케이블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타이어 공기를 확인한 후,
    나는 포크 테스트를 위해 일부러 비포장길을 골랐다.
    콘크리트에서 시작해 자갈길로 이어지는 도로,
    그리고 짧은 언덕 구간이 포함된 그 루트는
    평소엔 그냥 거치용 자전거를 끌고 다니던 나에게
    오늘만큼은 하나의 테스트 트랙처럼 느껴졌다.
    포크를 가볍게 눌러보았다.
    분명히 달랐다.
    오버홀 전에는 눌렀을 때 '퉁' 하고 반동만 있었던 포크가
    이젠 부드럽게, 조용하게 눌리고 올라왔다.
    그 리듬은 마치 잘 조율된 현악기처럼 일정했고
    한 박자 느리게, 그러나 정확히 되돌아오는 그 감각이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첫 번째 도로에 진입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포크의 역할이 체감됐다.
    작은 요철을 지날 때마다 손에 전해지던 충격이 현저히 줄었고,
    라이딩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전엔 노면 충격 때문에 팔과 어깨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갔었지만,
    이제는 포크가 그것들을 미리 흡수하고 처리해주는 느낌이었다.
    그 부드러움은 단순히 '서스펜션이 작동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내 몸의 피로도를 줄이고, 페달링 리듬 자체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해주었다.

    가장 큰 차이는 업힐과 다운힐에서 느껴졌다.
    짧은 비포장 업힐을 오를 때
    충격을 받아도 프론트가 갑자기 튀지 않고
    안정적으로 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고,
    다운힐에서는 자전거가 바닥을 읽으며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줬다.
    특히 급한 내리막에서의 제동 시,
    포크가 자연스럽게 눌리면서
    브레이킹과 조향 모두가 한층 더 부드럽고 정밀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주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땐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나는 그동안 이 포크를 부품 하나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늘 알았다.
    이 댐퍼 포크는 자전거의 앞쪽 감각 전체를 조율하는 핵심이며,
    그 감각 하나가 라이딩의 전체 경험을 바꿔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경험은 새 부품이 아니라
    내가 직접 고친 낡은 포크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
    이었다.
    오래된 댐퍼 포크라도,
    그 안에 남아 있는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고,
    시간을 들여 정비하고,
    정확하게 오일과 실을 맞춰 넣어주면
    새 부품 이상의 성능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분명히 느꼈다.

    이제 내 자전거는 단순히 탈거리 이상이다.
    그 위에는 내가 만든 감각,
    내가 되살린 기술,
    그리고 손끝의 시간을 기억하는 기계가 올라 있다.
    그걸 알고 나니, 더는 아무도 이 포크를 낡았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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